앙꼬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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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한민국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연극,영화배우입니다. 앙꼬는 나에게 무대이기에 희망입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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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오늘..

1960년2월28일,63년전 오늘 2.28 학생의거가 일어났습니다. 1960년 3월 15일 대선을 보름 앞두고 있었습니다. 민주당 부통령 후보 장면의 대구 유세장에 인파가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 일요일임에도 학생들에게 등교 지침이 내려집니다. ‘3월 중간고사를 앞당겨 일요일에 시험을 보겠다.’ ‘토끼사냥을 위해 일요일에 등교하라.’ ‘단체 영화 관람을 해야 하니 일요일에 등교하라.’ 일요일에 학생을 등교시키는 거 아닙니다. 학생 1,200명이 시위를 했고, 이는

1876년 오늘..

1876년 2월27일,147년전 오늘 강화도조약이 체결되었습니다. 1875년, 운요호가 조선의 강화도 앞 초지진을 박살냅니다, 일본은 포의 사정거리 차이를 보여주며 조선을 협박합니다. ‘전쟁할래? 통상할래?’ 결국 강화도 연무당에서 강화도조약을 체결하게 됩니다. 강화도조약은 우리 역사상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지만 불평등 조약이기도 했습니다.

무역적자..

🤬윤정부 무역적자 1년 연속 이어져.사실 상 ‘국가경제위기’📲 https://vodo.kr/rmkxCC4

감사합니다. 오늘

감사합니다. 날마다 감사한 일만 생기시기 바랍니다. 항상 감사의 조건이 차고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1637년 오늘

1637션 2월24일, 386년 전 오늘 ‘치욕적인 삼전도’의 굴욕이 있었습니다. 인조는 수도인 한양을 세번이나 빼앗겼습니다. 1624년, 이괄의 난 당시 공주로 피난.. 1627년, 정묘호란으로 후금이 침략하자 강화도로 피난.. 그리고 1636년,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남한산성으로 피난을 갑니다. 그러나 남한산성에서 45일간 항전하던 인조는 식량이 떨어지자 청나라 황제 홍타이지에게 항복합니다. ‘삼궤구고두레’ 세번 절하고 아홉번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1627년 오늘..

1627년 2월23일, 396년 전 오늘 정묘호란이 발발했습니다. 광해군의 중립외교를 핑계로 인조반정을 일으킨 서인정권은 친명배금을 표방했습니다. 분노한 후금은 광해군의 복수를 명분으로 3만의 병력과 함께 조선을 침략합니다. 막을 방도가 없었던 인조는 강화도로 몸을 피했고 강화도 연미장에서 굴욕적인 ‘형제관계’를 받아들입니다. 솔직히 후금의 형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신 못 차린 인조정권이 여전히 친명 정책을 고수하자 후금은 국호를 청으로 바꾼 후 병자호란(1636)을

1898년 오늘..

1898년 2월22일, 125년 전 오늘 흥선대원군이 79세의 나이로 죽습니다. 역사가들은 말합니다. “흥선대원군이 300년만 일찍 태어났어도, 조선의 역사를 바꿨을 것이다.” 그러나 권력의 망령에 사로잡혀 노역을 보였음이 아쉽습니다. 아들 고종은 흥선대원군의 장례식에 불참합니다.

1936년 오늘..

1936년 2월21일, 87년 전 오늘 뤼순 감옥에서 단재 신채호가 순국했습니다. 신채호가 부인 박자혜 여사에게 보낸 편지 “너무 추우니 솜옷 한 벌 보내주오.” 죽은 남편에게 쓴 박자혜 여사의 글 “15년이나 그리던 아내와 자식이 곁에 온 줄도 모르고 당신의 몸은 푸르팅팅하게 성낸 시멘트 방바닥에 꼼짝도 못 하고 누워 있었지요.” 신채호의 유언 “내가 죽거든 왜놈들 발에 시체가 채지

1546년 오늘..

1543년 2월20일, 480년 전 오늘 세자궁에 불이 났습니다. 중종과 장경왕후 사이에서 태어난 인종. 중종과 문정왕후 사이에서 태어난 명종. 장경왕후는 일찍 죽고 문정왕후는 오래 삽니다. 인종이 세자였던 시절, 세자궁에 불이 났습니다. 계모인 문정왕후가 자신을 싫어하니 그냥 불에 타 죽겠다는 착한 세자. 그 세자가 왕(인종)이 되고 8개월 만에 죽는데, 과연 누가 죽였을까요? 드라마 대장금에서는 문정왕후가 성품 좋은

🙋‍♂️ 662년 오늘..

662년 2월19일,1361년전 오늘 고구려가 사수전투에서 당나라에 승리했습니다. 당 고종은 수십만의 병력으로 고구려를 재차 침략했습니다. 당나라 수군 장수 방효태와 그의 아들 13명 또한 모두 전사합니다. 소정방을 비롯한 나머지 당나라 장수들은 신라 김유신의 구원으로 간신히 살아남았고 신라가 준 군량미를 챙겨 당나라로 후퇴합니다. 연개소문이 살아있을 때는 당나라는 고구려를 어찌하지 못했습니다.

2003년 오늘..

2003년 2월18일, 20년 전 오늘 대구 지하철 참사가 있었습니다. 어느 미치광이의 방화 행각에 무고한 시민 133명이 목숨을 잃고, 146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애도를 표합니다.

🙋‍♂️ 1988년 오늘..

1988년 2월17일, 35년 전 오늘 남극에 세종 과학기지가 만들어졌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해외 상주 기지입니다. 위치는 남극 킹 조지 섬의 바톤 반도입니다.

1562년 오늘..

1562년 2월16일, 461년 전 오늘.. 임꺽정이 죽었습니다. 명종 때 백정 출신 임꺽정은 황해도 구월산을 중심으로 활약했습니다. 여러 사람을 규합하여 세력을 키우고 조직적 도적으로 성장한 임꺽정은 관아의 창고를 털어 빈민에게 양곡을 나누어 주기도 했습니다. 관군이 토벌하려 했지만, 아전과 백성들은 임꺽정 편이었습니다. 그러나 부하 서림의 배반으로 온몸에 활을 맞고 죽습니다. 임꺽정은 장길산, 홍길동과 더불어 조선의 3대 도적이었습니다.

1894년 오늘..

1894년 2월15일, 129년 전 오늘 동학농민운동의 시발점인 고부민란이 일어났습니다. 탐관오리였던 고부군수 조병갑, 별명이 조 병신육갑입니다. 고부의 동학 접주였던 전봉준은 고부 관아를 습격했습니다. 조병갑은 도망가고 고부 관아를 접수한 전봉준은 관아의 곳간을 열어 곡식을 마을 사람들과 나누었습니다. 고부에서는 날마다 파티가 열렸습니다.

1410년 오늘..

1410년 2월 14일, 613년 전 오늘 조선왕조실록 편찬이 시작됐습니다. 태종 이방원이 태조의 실록 작업을 명했습니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우리의 기록 유산은 총 16개로, 세계 5위이자 아시아 1위입니다. 그중에서도 으뜸은 바로 조선왕조실록입니다. 사고에 보관된 태조부터 철종까지의 실록이 무려 2,077권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은 왕이라도 함부로 개입할 수 없는 객관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2004년 오늘..

2004년 2월13일, 19년 전 오늘 황우석이 인간배아 줄기세포 배양 성공을 발표했습니다. 세계 최초의 성공이었습니다. 난치성 질병 치료에 대한 획기적 기대감이 높아졌슾니다. 그러나 mbc ‘pd수첩’을 통해 모두 거짓임이 드러났습니다. 노벨상 수상 후보에서 사기꾼으로 전락해버린 황우석이었습니다.

1926년 오늘..

1926년 2월12일, 97년 전 오늘 매국노 이완용의 장례식이 호화롭게 치러졌습니다. 1905년 을사오적, 1907년 정미칠적, 1910년 한일합병 전권위원, 쓰리콤보 매국노 이완용이 67세 천수를 누리고 죽었습니다. ‘팔지 못할 것을 팔아서, 누리지 못할 것을 누린 자’ 그의 묘에는 항상 식칼이 꽂혀 있었습니다. 후손들은 유골을 화장 했습니다. 그 후손들은 떵떵거리며 너무나도 부자로 살고 있습니다.

1146년 오늘.

1146년 2월 11일, 877년 전 오늘.. 김부식의 삼국사기가 편찬됐습니다. 삼국사기는 우리의 역사서 중 가장 오래된 역사서입니다. 김부식 개인의 역사서가 아닌 국가가 주관한 관찬사서이고 유학자의 시각에서 단군설화 등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황제들의 이야기인 ‘본기’에서 우리 삼국의 왕을 다룬 것을 보아 마냥 사대적으로 볼 수만은 없습니다. 또한 ‘열전’에서 김유신의 분량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친신라적이었습니다. 단군설화는 삼국유사에

1948년 오늘..

1948년 2월10일, 75년 전 오늘 김구가 ‘3천만 동포에게 읍고함’을 발표했습니다. UN 한국 임시위원단의 38도선 이북에 대한 인구조사가 불가능해지며 남북한 총선거는 사실상 힘들어졌습니다. 남한만이라도 단독선거를 치르자는 분위기가 팽배해지자, 김구는 3천만 동포에게 울면서 말했습니다. “나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가 38도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에 구차한 안일을 취하여 단독정부를 세우는 데는 협력하지 아니하겠다.”

1898년 오늘..

1898년 2월9일, 125년 전 오늘 독립협회가 종로에서 만민공동회를 개최했습니다. 반민공동회는 열강의 이권침탈 반대운동을 전개하여 러시아의 부산 절영도 조차 요구를 묵살시켰습니다. 대한제국의 관료가 참여한 관민공동회에서는 백정 박성춘이 연설을 하기도 했습니다. “나는 대한의 가장 천하고 몰지각한 백정이올이다.” 그러나 만민공동회는 황국협회의 공격으로 해산됩니다.

1919년 오늘.,

1919년 2월 8일, 104년 전 오늘 도쿄에서 조선 유학생들이 2.8독립선언서를 낭독했습니다. 2.8독립선언은 훗날 3.1운동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2.8독립선언서’는 이광수가 썻으며 3.1운동의 ‘기미독립선언서’는 최남선이 작성합니다. 그러나 이광수와 최남선은 모두 친일파로 변절합니다.

1594년 오늘.

1594년 2월7일, 429년 전 오늘 송강 정철이 죽었습니다. 가사문학의 대가 (사미인곡), (속미인곡), (관동별곡) 유배지였던 담양의 식영정과 소쇄원, 정여립 모반사건으로 동인들이 대거 죽었던 기축옥사가 일어납니다. 신조는 정철에게 조사 책임을 맡겼고, 정철은 너무 많은 동인들을 죽여 별명이 ‘동인백정’이었으니… ‘글빨에 속지 말자’ -황현필의 한국사 일력중에서-

1922년 오늘..

1922년 2월 6일, 101년 전 오늘 일제강점기, 2차 조선교육령이 반포됐습니다. 일제는 보통학교 4년제를 6년째로, 조선어 교육을 필수로 지정했습니다. 그러나 1920년대 문화통치기 일제의 숨겨진 의도는 ‘조선 식민 지배에 유리한 인재 양성’이었습니다.

1909년 오늘..

1909년 2월5일, 114년 전 오늘 단군교인 대종교가 창지됐습니다. 을사늑약의 원흉을 처단하기 위해 오적암살단을 조직했던 나철. 오적암살 거사가 실패하자 나철은 신앙으로 구국운동을 하리라 마음 먹었습니다. 그리하여 만들어진 단군교는 대종교로 개칭한 후 항일무장투쟁에 주력합니다. 청산리대첩의 영웅 김좌진의 북로군정서 부대가 바로 대종교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