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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평책

탕평책(蕩平策)은 조선 영조 때 당쟁의 폐단을 없애기 위하여 당파의 치우침이 없이
각 당파에서 고르게 인재를 등용하던 정책을 말합니다.
탕평(蕩平)이라는 말은 왕도탕탕 왕도평평 王道蕩蕩 王道平平’ 으로 표현하기에 “치우침이 없으면 왕도가 탕탕하고 평평하다”라는 구절에서 유래하며, 탕평책이라는 말은 숙종 시기 박세채가 주창한 “황극탕평(皇極蕩平)”에서 유래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종종 쓰이는 표현인데, 여러 분류 기준에 따른 ‘주류’ 집단의 몫을 일정 이하로 제한하고, ‘비주류’ 집단에게도 지분을 주어 포용하는 인사를 할 때 “탕평 인사”라는 표현이 정계와 언론에서 여전히 사용됩니다.

탕평책을 쓴 대표적인 임금은 영조와 정조라고 볼수있습니다.
성균관의 맞은편에는 영조가 세웠다는 탕평비에 다음과 같이 씌어져 있습니다.
周而不比乃君子之公心 보편적이면서 편당하지 않는 것은 군자의 공심이요
比而不周寡小人之私意 편당하면서 보편적이지 않는 것은 소인의 사심이다.
위와같이 군자의 공심에 입각하여 인재를 등용하는것이 진정한 탕평책이라 볼수 있습니다.

정조대왕은 규장각을 통해 인재를 고루
등장시켰고, 정적을 포용하고, 서얼을 철폐하는 등의 정책은 탕평책의 최고봉에 이릅니다.

세종대왕의 탕평책으로 전통적인 양전제(양반의 특권)를 제한하고, 농민들에게 땅을 나눠주어 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하려는 시도를 했습니다.

또한 한글을 창제하여 교육을 받지 못한 하층민들도 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되어 지식과 정보의 공평한 분배를 촉진했습니다.

세종의 장인인 심온을 죽인 유정현과 박은을 수용하고 포용했으며 정적인 황희 정승까지 신뢰하여 정승자리 유지하도록 하였습니다. 세종의 탕평책은 조선왕조사에 중요한 이정표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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