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이 검은 까마귀,
까마귀는 까치와 다르다
마른 가지 끝에 높이 앉아
먼 설원을 굽어보는 저
형형한 눈,
고독한 이마 그리고 날카로운 부리.
얼어붙은 지상에는 그 어디에도 낟알 한 톨 보이지 않지만
그대 차라리 눈밭을 뒤지다 굶어죽을지언정
결코 까치처럼
인가人家의 안마당을 넘보진 않는다.
검을 테면
철저하게 검어라. 단 한 개의 깃털도
남기지 말고……
겨울 되자 온 세상 수북이 눈을 내려
저마다 하얗게 하얗게 분장하지만
나는
빈 가지 끝에 홀로 앉아
말없이
먼 지평선을 응시하는 한 마리
검은 까마귀가 되리라.
– 오세영, ‘자화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