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 고요를 흔들며
가만히 창을 두드리는
빗소리에 눈을 떠서
온몸으로
유리창을 타고 흐르는
비의 투명한 몸을 바라본다
무거웠을까?
그 무게 견딜 수 없어
아래로 흘러내리는 슬픔
고요히 번지며
낮은 곳으로 흐르노라면
그리움의 바다에 닿을 수 있을까?
사부작사부작
내리던 봄비에
내 가슴은 무너져 내리고
유리창은
무표정한 어둠을 배경으로
말갛게 얼룩지고 있다
어둠에 기대어 선
가로등 불빛 아래
하얗게 피어난 꽃은
그 꽃잎 한 잎
황홀한 심장의 파문 되어
내 가슴에 꽂히고
널 닮은 기억 하나
저 창문 너머에
아득한 그리움으로 남았는데
얼룩진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건
단조로운 불투명의 공간
작은 빗방울 흔적처럼
존재는 그저
가만히 얼룩질 수 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