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요, 아직 장롱 속 감춰둔 상자가 있고, 읽다가 그만둔 편지가 있고,
거실에는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빈 화분이 있으니,
괜찮아요,
그리고 내일이 있습니다.
장미가 피지 않아도 밖으로 나가 햇빛에 빨강을 널어야겠어요!
무릎이 깨지도록 손 모으는 일
시월에도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리고
붉은 립스틱을 바른 여자처럼
입술을 빈 화분에 심어야겠어요.
붉다는 건, 무엇이든 녹일 수 있으니까요.
푸른 잎이 하나둘 사라진 대도 실망하진 마세요.
그 혀 속에는 말 못 한 나무가 한 그루,
상자엔 아직 선물이 남았으니까
첫눈을 기다리기엔 점점 멀어지는,
시월에도 눈이 내려, 빨갛게 물드는 그런 일
처음 한 약속은 어디쯤 머물렀는지,
그러니까, 아무런 상관없이 빨강을 담을 거예요.
손안에서 사라지는 알 수 없는 색
맹렬하게 녹아내리는 붉힌 마음으로
사라져야 볼 수 있는,
오랜 고백의 자세로 간직해온
난 빨강을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