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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절 운동 박석훈 목사님 순국

오늘은 삼일운동 105주년되는 날이다.
나의 증조부 박석훈 목사님께서는 삼일운동때 평양에서 순국하셨다.
멋진 콧수염을 기르시고 2:8 가르마를 타신 현대적인 모습의 사진이 딱 한장 남아있다.

박석훈은 1883년 11월 30일 평안남도 강서군 함종면 발산리에서 태어났다.(도산 안창호 선생과 동향이시다.)
그는 협성신학대학을 졸업한 감리회 목사였으며, 1919년 당시엔 평양 남산현 교회 부담임 목사를 맡았다.
1919년 2월 말, 신홍식은 그에게 태극기를 제작하여 평양에서 발발할 독립만세시위를 지휘하게 한 뒤 자신은 서울로 가서 독립선언식에 참석했다.
박석훈 목사는 3월 1일 남산현교회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후 군중을 이끌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거리를 행진했다.
이 시기 광성학교 학생과 숭의학교 학생들도 뒤따라 궐기했고, 세 곳의 시위대는 곧 합세한 뒤 평양 시내를 행진했다.
이 일로 경찰에 체포된 그는 옥고를 치르다가 11월 15일 평양형무소에서 옥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박석훈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남산현교회는 1919년 3·1운동에서도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담임목사였던 신홍식은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여 옥고를 치렀다.
또한 부목사였던 박석훈(朴錫薰)은 3월 1일 8백여 명의 교인들과 함께 교회에서 고종황제 봉도식과 독립선언식을 갖고 만세 시위를 지휘하다가 체포되어 고문을 당하고 11월 15일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페친 #박창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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