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모
백무산
아이들 머리통만 한 배 하나 받아든다
어디서 달려왔는지
불룩한 배는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열매가 달려온 곳을 떠올려본다
터무니없을 만큼 큰 열매를 매달았을 나무를
간신히 떠올려본다 열매가 달려 있던 자리를
바람에 몸을 흔들어보지도 못하는 나무
햇살에 머리를 풀어헤쳐 보지도 못하는 나무
쇠파이프에 묶이고 쇠줄에 감긴 나무
자기 몸을 자기가 가질 수 없는 나무
열매의 무게에 찢어지는 팔을 가진 나무
겨울 언 땅에 발등이 터져 있을 나무
생식기만 있는 나무
나무를 기억하지 못하는 열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오직 접시 위에 놓이기만을 위해 달려온 길
칼을 들다 나는 몇 번이고 손이 저리다
(『울산작가』 31호, 2021) — 본문 중에서